2022.09.13
태어남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생. 그 끄트머리를 매만지고 더듬어도 그것을 품에 안은 감정의 한 가닥도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위대함에 대하여. 나는 고해하나니, 나의 이름이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그녀를 바라보는 눈을 감아버렸나이다.
힘겨이 눈을 뜬다. 짙은 아까시 향이 숨을 가득 채운다. 꽃의 이름도, 생김새도 중요치 않았다. 오월의 그 단 향기에, 어디서도 지워지질 않아 깊은 숨을 들이키면 한껏 취할 듯 다가왔다 금방 사라져 버리는 그 향에 흠뻑 도취된다. 몇 주, 몇 달, 아니 사실은 십 칠년을 넘게 기다려온 것이 천천히 그 향 속에서 눈을 떴다. 생일을 알지 못하는 어리고 가쁜 것. 새카만 강에서 죽음을 그리는 나의 작고 검은 심장.
그것이 태어남인가.
괴물, 그것만이 알고있는 괴물이 고요히 인사한다. 강은 죽음이다. 사람들은 그 위로 다리를 놓고 불을 밝히고 배를 띄운다. 강은 여전히 흐른다, 그 안에서 작은 것들이 헤엄치고 날아오르고 또 그것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강은 여전히, 죽음이다. 맣갛게 빛나는 노랗고 붉은 것들이 그 표면을 더듬을 수 있는 검은 몸뚱아리가 내게 그렇게 속삭이는 듯 했다. 그 옆을 지나가면서 단 한 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만이 알고있는 죽음. 나만의 강.
수심을 알 수 없는 강을 내려다본다. 앞으로도 뒤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찰랑이는 물결. 올라왔다 내려가고 서로 부닥치는 것을 반복하여 붙박힌 글자로도 그어낸 색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반짝임. 물결은 여전한데 하늘이 내려앉으면 그제야 드러내는 죽음이라는 이름. 가끔은 그곳에 흠뻑 빠지고픈 마음 뿐이다. 저 하늘로 추락한다면, 저 강으로 비상한다면. 색으로 정의되는 창공, 박쥐는 우주를 나는 생물이다. 진정한 묵음 속에서 멀어지는 노란 빛을 마지막으로 검은 것으로 돌아간다면
휘청대는 숨을 가다듬고 검은 물을 뚝뚝 흘리는 심장을 기워붙여 흰 꽃의 내음으로 장식하니, 나는 나의 태어남을 명명하였다. 죽은 기억과 죽지 아니한 기억의 과거, 그 모두에게 애도하는 나의 이름, 내가 정의한 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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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내가 아니게 될 적에 2는 무슨 의미이고 또 3은 무슨 소용인가. 모든 것을 제 뱃속으로 집어삼키는 0만이 목을 죄인다.
무딘 칼을 쥐고 베어낸다. 부스스 흩어지는 검은 가루. 비죽 튀어나온 것들을 긁어내니 미약한 고통으로 그저 삶을 느낀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연제나 영원을 그린다. 강이 흘러가는 것처럼, 오월에는 꼭 다시 그 꽃이 필 것처럼.
자정. 한 발자국,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떼어내어 나아가야만 하는 길. 두 걸음,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것조차 느끼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스치움. 셋, 나는 절망하지 않으리다, 나는 절명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말들은 하늘을 좇을 수 없어 다만 침잠할 뿐이다. 넷.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도 질린다. 졸리웁다. 그저 깊은 잠에 빠지겠다. 그러나 잠에 들 수 없는 심장만 혈액을 쥐어짜는 것을 반복한다. 다섯, 그리고 반복. 귀추한다. 여섯. 스치운 바람을 잡으려 손짓하는 것을 낭만이라 부르렷다. 그렇담 기억되지 않는 삶도 낭만이렷다. 일곱. 여덟, 잉크로 적힌 글자는 사라지나 그 흔적만은 움푹 남아 흉이 되어버린다. 아홉. 숨을 삼킨다, 바람을 삼킨다. 삼키고 삼키어 가장 작게 뭉친다. 도려낸 심장에서 울컥 새나오는 검은 마음. 하나, 공백과 반복. 열을 알지 못하는 십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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