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1
여기에, 내가 만드는 모든 것들에 내 일부를 담는다, 그 안에 내가 존재한다.
그리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은, 죽음과 같으리라.
죽음에 대해서 떠올린다. 그 외로움에 대하여, 참된 고독과 무의미에 대하여. 가치라는 단어는 존재치 못하고 이 작은 몸뚱아리가 부서지고 잊혀질 그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그러므로 생은, 적어도 나의 살아있음이란 무의미가 배제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아무것도 배우고 쓰고 또한 그릴 수 없다면, 그렇게 나를 녹여낼 수 없다면, 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음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종이 친다. 열 두 번.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막는다. 나의 일부가 담긴 그 무엇이라도 비명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내가 허용치 않겠다. 하여 나는 온 몸을 구부리고 감싸 가장 깊은 구석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에 뱉어내는 것이 그저 절규가 아니길 바라며 펜을 든다. 전부 뱉어내고 나면 결코 그들을 불태우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가끔멈추요멈추어서자신이아주멈추지않을까떨고움츠리고숨고온갖색과온갖빛을피하엿소그는스스로의이름을벗기를간청키도햇소만더는작지않은그심장이막아내오그가뱉어내고적어낸모든활자와활자아닌문학과문학조차아닌비명들이그의도주를막앗소
왜 살아야 하는가. 누구라도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없을 것임을 안다. 당신의 모순됨을 물었으나 그 모순조차 하나의 삶이라 말하는 순간 나는 결코 반박할 수 없으리란 것도. 결핍 없는 인간이 존재치 못한다면 결핍 없는 관계도 존재치 못할 것인가. 횡단하는 두 쌍의 발, 엇박으로 올바른 왈쯔가 星行하노라. 나는 결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을 닮았다고는 할 수 있을까? 다른 결핍에서 엇갈리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그 꺾여진 부분을 한 순간도 짚지 못하고 그저 윤곽을 겨우 더듬을 뿐이라도, 어떤 위로도 화도 내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라도? 그러나 감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내게 그러한 만용이 허락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도 좋을까, 이 그림을 그리고 또한 스스로 명명하여도 좋을까.
“휘어짐과 꺾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