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받은 글

꽃의 이름으로 초목은 의미를 얻는가?

무엇을 아름답다 칭할 수 있는가.

무엇을 아름답다 칭할 수 없는가.

찬란함이란 무엇이며 또한 완벽이란 무엇인가— 단어를 정의내린 그 작자만이 칭할 수 있겠지.

나는 그 모든 것에 반기를 들겠노라, 생의 본질은 죽은 모든 것에 대한 반기이므로.

결핍, 때로는 결핍이 한 인간을 무척이나 효과적으로 설명하고는 한다. 어째서일까, 있어야 옳은 것의 부재가 결핍이람 무결핍의 인간은 존재하는가, 혹은 이상은 실제가 될 수 없으므로 인간은 누구나 결핍하는가. 이 중요하지 않은 질문들 사이에서 다만 확실한 것은 나와 당신이 아주 다른 결핍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이루는 가장 간단한 질문이 당신을 당혹스럽게 한 것처럼.

당신을 알기 위하여 나는 당신이 피워낸 것들을 살핀다.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이름 대신, 당신이 선택한 단어로 이루어진 그들이 당신을 대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삶을 본다. 생이 아닌, 어떠한 삶을.

시간이란 변화의 척도이다.

시계란 시간의 척도가 된다.

시계는 무엇인가 — 변화 없는 시계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누구도 찬란이라는 단어를, 심지어 그 자신도, 써주지 않았다. 그가 외치는 삶은 참으로 반짝였으나 그로인해 침잠하는 그의 생은 그 반짝임을 목도하였을 뿐이다. 그렇게 그의 생은 스스로 그 단어에 파묻혀버리고야 말 운명이다. 그는 삶을 속삭이는 문인이었으나 그렇게 생을 사는 글이 되어버린다. 찬란하게, 너무도 찬란하게.

꽃도 향도 특징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