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2

받은 글

죽음에 대해서 떠올린다. 그 외로움에 대하여, 참된 고독과 무의미에 대하여.

나는 종종 떠올린다. 아득한 무無에 대하여. 내가 눈을 감기만 한다면 사라질 저 수많은 별들에 대하여. 내가 눈을 감은 후를 떠올린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로, 내가 작게 새겨둔 글자와 선마저 모두 잊혀져 완벽히 죽는 순간을. 기억되는 것으로 죽은 이름이 연명한다면 나는 채 백 년이 가지 못하겠지.

종종 떠올린다, 까마득하고 새카만 우주에 대하여. 서로에게서 빛보다도 빠르게 멀어지기 때문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볕조차 전부 사라지는. 완벽한 공백과 암흑. 그것을 처음 자각한 아뜩한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낭만주의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사는가” 하고. 나는 즉시 답한다. “티끝만한 인생에서 그것 남기어 무엇 하려고.” 그러나 나는 또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이 우주에서 당신의 일생은 당신에게 큰 폭발이었으리라 - 마치 나의 생이 나에게 그러하듯.”

이 차이는 어쩌면 시대상의 것일지도 모른다. 뛰어난 사람들, 글줄과 그림들과 새로운 정보들. 물론 그 흐름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그 흐름에서 독립되이길 바란다. 하여 나는 남기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이상.

내가 질식한다면, 그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서 깊은 숨 대신 죽어버린다면. 그렇다면 나는 참 좋겠다

새하얀 포말이 바글바글 끓어 서로를 밀어내고 또 침식하고 서로를 서툴게 빚어내고 잘게 거칠게 부서지고 그렇게,

새파랗게 젖고 붉게 타오르고 새카맣게 녹아가는 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하늘을 닮은 새파란 죽음에 파묻히고 두 눈동자에 가득 담아 조각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득 채운 폐를 아가미처럼 팔딱이면 비늘도 지느러미도 없이 인어 되이길 소망한 그 마지막으로 이 숨에는 저 한없는 바다 끝까지 담을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 왔던 곳으로 돌아가자. 저 바다로, 가장 깊은 곳으로. 저 하늘로, 가장 완연한 곳으로.

그러므로 감히 말하자면 나는 현재를 산다. 영원한 현재. 내가 존재치 않으면 의미가 없노라 선언한다. 과거란 기억이고 미래란 지향점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염세주의-이 단어가 적절한가 알 수 없으나 누군가는 나를 궤변론자라 부르곤 했으니-를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당신의 삶, 흔적을 남기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은 진실로 당신의 몫이라고. 나의 삶의 가치와 당신 삶의 가치는, 오로지 우리만이 정의하니, 실로 이 횡단하는 발걸음은 가치있노라고, 실로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