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곱하든0이되어버리며는그것이다무슨소용이구.무엇을곱하든자기자신이며는또그건무슨소용이구.그둘이만났드라구소문이퍼졌다가없던일이되었다구신문에났다가.영영사라지었다구. 0ᆞ1
/ @0317_KHJ
글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유고집>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 그에 대한 소문, 신문, 그리고 영영 사라지는 것. 그것을 떠올리고 글을 다시 읽자면 - 회갈색 다방에 뚫린 큰 유리창에 밝지 않게 비치는 흐릿한 햇빛, 재차 그것을 흐려놓는 매캐한 담배 연기와 버석버석한 신문을 든 익명의 사람들.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이하게 독립적인 두 존재. 그들이 사라졌음에도 페도라를 쓴 이들은 변하지 않고, 단지 두 명을 위한 자리만이 어둑하게 강조되는. 꼭 그런 풍경이 생각난다.
가장 재미있게 느낀 것은 이렇게 뚜렷한 심상을 표현하면서도 어떠한 감각적인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두 숫자(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아주 짤막하게 표현할 뿐이지만 띄어쓰기 없이 단번에 읽어내리는 문장에 스민 어떠한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감각적인 표현이 존재하지 않기에 도리어 느껴지는 일종의 건조함이다. 숫자와 곱셈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매개체를 사용하여 ‘두 사람’과 ‘만남’을 서술하였는데, ‘0ᆞ1’이라는 표기를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고 가장 마지막에 넣은 것 또한 탁월하다. 마지막 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짧은 시를 이루는 가장 주요한 이 세 가지(0, ᆞ, 그리고 1)의 존재를 첫 두 문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라, 숫자는 일종의 비유와 매개일 뿐이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런 심상을 서술함에 있어 읽는이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는데, 내가 수학적인 비유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해서 이론적인 부분을 조금만 곁들이자면- 수학에서 0과 1은 아주 특수한 수이다. 연산에 있어서 특별한 성질 때문에, 이 숫자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이 숫자 체계와 기본적인 틀—‘청사진’—이 동일하기만 하면) 다른 숫자 체계에서도 온전히 동일한 성질, 즉 동일한 이름을 부여받는다. 0은 다른 숫자의 세계에서도 0이고, 1은 다른 숫자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1이다. 하여 0은 어떤 세계에서도 더해져도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1은 어떤 세계에서도 곱해져도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다시 말해 — ‘유이하게 독립적인 두 존재’가 되는 셈이다.
이 글은 온점으로 끊어진 문장들의 길이도 자연스러운 읽기에 도움을 준다. 처음 두 문장은 비슷한 중간 정도의 길이이고, 둘이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세 번째가 가장 길고, 마지막 ‘영영사라지었다구’가 가장 짧다. 즉 문장의 길이로 보았을 적에 이 글은 절반 가량을 두 숫자의 특수성과 만남의 무용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 직후 이어지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 또한 일말의 유용이나 낭만, 즉 어떠한 긍정적인 기류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영영 사라짐’ 다음에 남는 것, 그 직후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곱셈식이다. 곱셈의 결과도 아니고, 등호가 포함된 항등식도 아니고, 그저 텅 빈 공허도 아닌, 곱셈 그 자체. 즉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결과 — 영영 사라짐이 아니라, 오히려 영영 사라지는 그 결과만을, 그 무용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느껴지는 어떠한 기시감, 혹은 그로부터 산출되는 다른 감정이다. 곱셈의 결론이 무용한가, 그 숫자와 곱셈이 되는 것이 무용한가, 또 소문이 났다가 금세 사라지고, 영영 사라지고. 그 모든 이야기의 과정, 결국 무용하게 되고야 마는 허무함 — 그러나 그 뒷편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그조차도 무용할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허무함, 일말의 낭만. 그런 모순적인 감각이 뒤섞이는 글이라고, 나는 느낀다.